2010년 3월 26일 금요일

저렴한 인생

사진 출처는 구글검색~

청년실업 어쩌구, 인터넷이며 TV며 온갖 매채들이 온통 싸질러 놓는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청년의 한 사람으로서, 학생 신분을 간당간당 유지하고 있는 실업이 목전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물론,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떠들어 대지 않아도 이미 알고있다. 온 몸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 불안하다고.

생활의 안정이 위협받고, 위기감이 증가할 수록 '싼걸' 찾기 마련이다. 아아. 먼저 말하자면 나는 싼걸 좋아한다. 같은 값이면 싼게 좋구, 똥이나 오줌을 싸는 것도 무지 좋아한다. 뭐, 똥이나 오줌을 싸는 행위를 좋아할 뿐이지 그 결과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니 '싼것'을 좋아한다고 하기는 뭐하지만 그렇다고 해두자. 참! 욕을 싸지르는 것도 좋아한다. 그것은 결과물도 좋아하니 '싼것'을 좋아하는게 맞구만.

한층 더 싼걸 찾고, 저렴한 것을 찾다보니 인생도 저렴해지는 느낌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저렴하다'는 "물건 따위의 값이 싸다"라는 의미란다. 저렴하다의 어근인 '저렴'의 한자말은 '低廉'이다. 낮을 저에 청렴할 렴이라... 청렴함이 없단 뜻인가? 저 '렴'자에 "값싸다"라는 의미가 있지만 왠지 다른 뜻이 눈에 들어온다.

따지고 보면, 생산수단으로서의 인간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게 실업 아닌가. 나의 노동력을 어떤 값에 내놓아도 사는 사람이 없으면 점점 더 저렴해지는 거겠지. 청년실업이 많다는 것은 사회가 그들의 가치를 저렴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말이다.

개성없는 생산수단으로 평가받는 것도 서러운데, 값싼 인간이라니 참으로 저렴하구나.

2009년 12월 25일 금요일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믿는 그대에게 : 1914년 크리스마스의 기적


한 독일 남자가 공을 힘껏 찬다. 그의 발을 떠난 공은 그의 기대와는 달리 맥없이 전진하지만, 손 끝이 얼어붙은 영국 남자는 그 공을 놓치고만다. 여기저기서 볼멘 소리가 들린다.

"이런 빌어먹을 멧돼지 염통은 당췌 어디로 공이 튈지 예상할 수가 없다니까."

골문을 지키던 영국인이 주변 동료들에게 혼이날까 먼저 선수를 친다. 여기 저기서 웃음 소리가 들려오고 경기는 끝이난다. 최종 스코어는 3대2. 독일의 승리다.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묘사해 보자. 한 독일 남자를 독일 병사로, 손 끝이 얼어붙었던 골키퍼는 영국 병사로. 여기 저기서 들리던 웃음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니 독일과 영국 뿐아니라 프랑스에서 온 병사들의 웃음소리도 들어있다. 잘 튀지 않던 돼지 염통은 삼 국의 이등병들이 엎어지고 무릎이 깨지면서 잡아온 멧돼지의 것이다. 그리고 축구 경기가 열렸던 장소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격전지였던 'No man's land(무인지대)'였다.

상공에서 본 무인지대(No man's land); 참호와 참호 사이에 넓은 지역을 말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 지역은 룩셈부르크와 벨기에를 시작으로 참호를 파기 시작한 독일군이 프랑스 내륙으로 그 참호를 확장하자 연합군도 이에 맞서 참호를 파고 대치하여 형성된 긴나긴 전선의 일부였다. 이 지역을 '서부전선(Western Front)'이라 한다.

이 서부전선의 무인지대에 대해 영국의 시인 윌프레드 오언은 다음과 같이 편지에 적었다고 한다.

 

No Man's Land is pockmarked like the body of foulest disease and its odour is the breath of cancer...No Man's Land under snow is like the face of the moon, chaotic, crater-ridden, uninhabitable, awful, the abode of madness.
Hideous landscapes, vile noises....everything unnatural, broken, blasted; the distortion of the dead, whose unburiable bodies sit outside the dug-outs all day, all night, the most execrable sights on earth.
무인지대는 마치 부정한 질병에 걸린 시체 위의 마맛자국 같으며 그 악취는 종양의 호흡과도 같다…눈 아래 무인지대는 마치 달의 얼굴과도 같으며, 혼돈, 탄공(彈孔)이 만연하고, 사람이살 수 없고, 끔찍한, 광기의 거처이다.
오싹한 광경, 불결한 소리…모든 것들이 부자연스럽고, 부숴지고, 폭파되었다; 매일 밤낮으로 파헤쳐져 묻힐 수 없는 시체들이 밖으로 나앉아 있는 죽은이들에 대한 왜곡이 존재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저주받을 광경이다.

당시 독일과 연합군은 이런 참호를 약800km이상 팠다고 한다.


이렇듯 참담한 전쟁의 현장에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난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이 지역에 인간애가 피어오른 것이다. 1914년 12월 24일, 서로를 저주하던 영국과 독일 부대는 이날도 서로를 감시하며 죽음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독일 진영에서 크리스마스 트리의 촛불이 참호를 밝히고 크리스마스 캐롤 '고요한 밤 거룩한 밤(Stille Nacht)'이 울려 퍼진다. 이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은 영국군이 환호를 보냈고 양 측의 장교가 만나 '크리스마스 휴전(The Christmas truce)'에 합의한다.

양국의 군인들은 서로 선물을 주고받고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벌였으며, 어떤 전선에서는 축구경기가 벌어지기도했다. '지식e'에 따르면, 한 영국 군인의 일기에 "독일군이 3:2로 이겼으나 독일군의 마지막 골은 오프사이드였다"고 기록했다고 한다.

무인지애에서 만난 독일과 영국의 군인들


당시 상황을 기록한 한 영국 군사의 편지 일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This will be the most memorable Christmas I've ever spent or likely to spend: since about tea time yesterday I don't think theres been a shot fired on either side up to now. Last night turned a very clear frost moonlight night, so soon after dusk we had some decent fires going and had a few carols and songs. The Germans commenced by placing lights all along the edge of their trenches and coming over to us—wishing us a Happy Christmas etc.
이것은 내가 지내온 혹은 지낼 크리스마스 중 가장 기억에 남을 크리스마스다: 어제의 티타임 이후에 난 양쪽에서 지금까지 총을 쐈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없다. 지난 밤은 매우 깨끗하게 달빛 서린 밤으로 변했기에, 금세 찾아온 땅거미 진 어둠 후에 우리는 몇 개의 너그러운 불을 지피고 캐롤과 노래를 불렀다. 독일인들은 그들의 참호의 가장자리를 따라 모든 불빛을 놓기 시작했고 우리에게 다가왔다—우리의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바라며.
 
…(중략)…
 
We can hardly believe that we've been firing at them for the last week or two—it all seems so strange. At present its freezing hard and everything is covered with ice…
우리는 지난 한 두주 동안 그들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그것이 모두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현재 그것들은 모두 단단하게 얼어있으며 모든 것은 눈으로 덮여있다…

전쟁중에 피어난 이 아름다운 기적은 안타깝게도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이 기적의 소식을 접한 양 측의 사령관들은 분노했고 결국 기적은 다시 끔찍한 전쟁으로 전락했다. 이 죽음의 그림자가 창궐한 세계 제1차 대전은 이후 9백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다.

1914년 전장에서 피어난 '크리스마스 휴전'에 대한 이야기는 기적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데서 나타남을 알려주는 징표처럼 다가온다.

2009년 12월 21일 월요일

강허달림 연말 콘서트 : 소리, 그녀가 되다

강허달님 송년콘서트

지난 금요일. 홍대 앞 북적거림을 지나 상상마당으로 향했다. 앰네스티의 배려로 강허달림의 콘서트 티켓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강허달림이라는 낯선 이름을 들고 그녀를 찾아갔을때 콘서트홀은 이미 열기가 후끈했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다소 늦었지만 그 열기를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콘서트홀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허스키했다. '호소력이 짙다'라는 관용적 표현이 어울릴만한 목소리였다. 사실, 필자는 이번 콘서트 이벤트를 통해 그녀의 이름을 처음 접했다. 이 낯선 가수의 콘서트로 발걸음을 향하게 한 것이 그녀의 목소리였다. 검색을 통해 그녀의 1집 <기다림, 설레임>을 듣고, 그녀의 목소리에 반해 버렸다. 강호달림의 목소리는 내가 좋아하는 이은미나 한영애와 많이 닮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들을 키워냈던 그룹 신촌 블루스의 마지막 보컬리스트란다. 한영애, 김현식, 이은미 등 신촌 블루스가 키워낸 훌륭한 뮤지션의 족적을 통해 미루어 보더라도 그녀의 음악적 능력은 의심할 바 없을 것이다.

콘서트 현장에서 보여준 그녀의 솔직한 모습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털털하게 웃으며 관객과 농담을 주고 받다가도 경쾌한 리듬의 음악을 선보이는가 하면,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고는 애잔한 음악을 시작했다. 음악을 들었다기 보다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듯한 느낌이었다.

강허달림이 선사한 이번 공연의 제목은 "소리, 그녀가 되다." 였지만, 사실 이번 공연에서 그녀의 소리는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메아리가 되었다.

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공무원의 노동3권을 허하라

※필자 주 : 이 포스팅은 앰네스티 블로그의 "블로거가 바라본 앰네스티와 인권(12월3째주)"에 소개되었던 파이어님의 "한국은 국제적 인권규약에 빨리 가입하라!"라는 포스팅에서 동기를 얻었습니다.


B규약의 채택과 유보조항

보통 국제인권장전이란 1946년의 인권장전 초안과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 그리고 1966년의 국제인권규약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들 문서는 서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나 국제사회에서 '인권'이라는 가치를 서로 공유하고 합의하는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세계 인권 선언은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규범-적어도 도덕적 강제력을 갖는-으로서 제2차 인권 혁명의 핵심적 열매이자 현대 인권담론의 핵심적 텍스트로 인정받는다.

이러한 세계 인권 선언을 바탕으로 보다 구체적을 발전한 '규약'이 바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A규약)'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B규약)'이다. 물론 인권을 보장한 데에 있어서 그것을 왜 경제적 권리와 시민적 권리로 나눴느냐 하는 것은 이 국제규약이 체결되던 시기가 냉전시대였음을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 두 다자간의 조약을 체결하는데 있어서 B규약의 제14조 5항, 제14조 7항, 제22조 및 제23조 4항에 대해서는 유보조치를 내렸다가, 제14조 7항, 제22조 및 제23조 4항에 대하여는 모두 유보를 철회했다.

출처, 외교통상부

 
우리나라가 유보조치를 취하고 있는 제22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 22 조

1. 모든 사람은 자기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이에 가입하는 권리를 포함
하여 다른 사람과의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2. 이 권리의 행사에 대하여는 법률에 의하여 규정되고, 국가안보 또는 공공의 안전, 공공질서,
공중보건 또는 도덕의 보호 또는 타인의 권리 및 자유의 보호를 위하여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것 이외
의 어떠한 제한도 과하여져서는 아니된다. 이 조는 군대와 경찰의 구성원이 이 권리를 행사하는 데 대
하여 합법적인 제한을 부과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

3. 이 조의 어떠한 규정도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의 보호에 관한 1948년의 국제노동기구협약의
당사국이 동 협약에 규정하는 보장을 저해하려는 입법조치를 취하도록 하거나 또는 이를 저해하려는
방법으로 법률을 적용할 것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B규약 제22조와 헌법 제33조 제2항의 충돌

우리 정부는'결사의 자유'를 내용으로하는 B규약 제22조가 우리 헌법 제33조 제2항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와 저촉될 우려가 있어 이를 유보한다고 한다.

우리 헌법 제33조 2항은 노동3권을 가지는 공무원을 "법률이 정하는 자"로 한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일반법인 국가공무원법은 제66조에서 공무원의 노동운동을 금지하고있으며 다만 예외로서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을 정하고 있다.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란 지식경제부 소속의 현업기관과 국립의료원의 직업 현장에서 노무에 종사하는 기능직 공무원 및 고용직 공무원을 말한다.

더욱이 이것 외에도 지방공무원법이나 특정직공무원에 관한 법에의하여 교육공무원, 군인, 경찰관 등의 공무원의 근로3권을 제한한다.

정리하면,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공무원은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다만 예외로서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노동3권만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공무원 노동3권 제한의 근거

앞서 말한 헌법 제33조 제2항 이외에도 공무원의 노동권을 제한하는 근거로는 헌법제 제37조 제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를 들 수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33조 제1항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기본권은 어떤 제약도 허용되지 아니한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라 질서유지나 공공복리라는 관점에서 당연히 그 내재적인 제약이 있으며, 그 제한은 노동기본권 보장의 필요와 국민생활 전체의 이익을 유지·증진할 필요를 비교형량하여 양자가 적정한 균형을 유지하는 선에서 결정된다고 할 것이다. (90헌바19)
라고 하여 필요한 경우 노동3권도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판시했으며, 또한 공무원의 직무에 대하여는

국민전체의 봉사자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근무하고 직무집행에 있어서 전념의무가 있는 것이 공무원의 신분상의 지위인 것으로 보나 국가기능의 계속성의 확보를 위하여도 일반근로자의 경우와 달리 입법자에 의한 제한은 부득이한 것 (88헌마5)

이라는 이유로, 그 직무의 성질상 공무원의 노동3권을 제한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더불어 말하자면, 공무원의 일반적 의미의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하여는 헌법상 당연히 인정된다(90헌바27).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 사항

판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공무원의 특수성, 가령 그 직무가 공공을 위한봉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공무원의 노동3권을 배제한다.

하지만 한계레의 07년 6월 14일자 기사 <ILO ‘노동3권 제한’ 한국정부에 초강경 권고안>을 인용하자면, 국제노동기구(ILO)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다.

13일 국제노동기구 산하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이사회에 내기 위해 마련한 권고안 초안은 “1998년 한국 정부가 협약 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에 대한 원칙의 적용)를 비준하겠다고 한 약속”의 이행을 촉구했다. 이 협약을 비준하면, 경찰·군인을 뺀 모든 공무원에게도 민간 부문과 똑같이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한국은 복수노조 허용이 2010년 이후로 유예됐고 공무원의 노동3권이 제약되고 있는 탓에 비준을 하지 못하고 있다.

초안은 “6급 이하뿐 아니라 모든 공무원의 노조 가입을 보장하고 필수 서비스를 제외한 공무원의 파업권을 허용할 것”을 촉구하면서,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보고되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또 건설 일용직 등 열악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해 기술적 지원을 하겠다고 거듭 밝히면서,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인 개입 뜻을 표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포항건설노조 하중근씨 사망 사건과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 경찰이 동원된 사례 등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한국 정부에 강한 유감을 드러냈다.

만약, 이 기사가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현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프레시안의 09년 11월 24일자 기사 <국제 노동계 "ILO 권고 무시하는 MB정부 개탄">을 참고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ITCU-AP는 공무원 노동권 문제를 지적했다. 이들은 "공무원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에 대한 지나친 제한과 과도한 정부의 개입은 노동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공무원노조 탄압 중단" 요구와 함께 "단체협약 해지 등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썩은 뿌리를 뽑자

판례에서도 확인했던 우리나라의 공무원에 대한 노동3권의 제한의 핵심 요지는 공무원의 직무는 그 특성상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 기사에서도 잘 나와 있듯이 ILO은 경찰·군인이나 중요한 관리권한 내지 정책결정권한을 가진 공무원의 단결권에 대해서만 노동권의 제한을 가할 수 있다고 한다. 다름아닌 그 직무의 특성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정말 필요한 경우에 이를 제한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제한을 가해야 할 공무원의 특성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자 이외의 모든 공무원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다.

이 공무원의 노동권 제한이라는 것도 박정희 쿠데타 정부의 제5차 개헌을 통하여 우리 헌법에 처음 고개를 내밀었다. 1962년 개정 헌법 제29조 제2항,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로 인정된 자를 제외하고는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질 수 없다"는 조항을 시작으로 87년 마지막으로 개정된 현재의 헌법까지 썩은 뿌리를 내리고있다. 더욱이 김영삼 정부는 OECD에 가입하는 시기에 관련 협약을 비준할 것을 약속한 바 있으나 여지껏 아무도 제초제를 뿌린 적이 없다.

현재 우리나라가 유보하고 있는 B규약 제22조의 유보철회는 공무원에 대한 노동3권을 보장하는 개헌논의와 함께 이루어 지거나 헌법 제32조 제2항의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해당하는 하위법률의 개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반드시 실현해야한다.

여기에 더불어 국제 노동기구가 10년이상 우리나라에 권고해 온 협약을 비준한다면 금상첨화일텐데, 나라가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어쩐지 힘들어보인다.

하지만 혹시 알겠는가. 돌아오는 명절에 YS가 큰절하러 온 MB의 부하들에게 자기가 못지킨 약속이 있다고귀띔이라도 해줄지.